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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談

2년 과정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에.

어제 학교를 마치고 오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달이 예쁘게 떠 있었다.

2년 여 동안 진행된 한 과정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아직 시험이 남아 있기 때문에 시원섭섭한 느낌이 들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13년 9월, 처음 등교하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에는 학교에 지하철이 안 뚫려서 버스를 타고 오는 길밖에 없었는데, 맨날 어디서 내려야할지 몰라서 꼭 물어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는 강의실을 못 찾아서 한참을 헤매고...

식당이 바로 앞에 있었지만 그걸 알지 못했던 나는 쫄쫄 굶거나 빵을 사왔어야 했고... ^^

지금은 에스컬레이터로 잘 연결이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공사중이어서 빙빙 돌아 갔어야 했었다.

 

영어로 된 과정을 처음 했던 관계로[각주:1] 처음에는 솔직히 잘 못 알아들었다.

여기 홍콩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국 학제로 공부했고, 영어로 수업을 받고 영어로 레포트를 쓰는 데 익숙했던 반면, 나는 영어로 친 시험이라고는 토플, IELTS, TEPS 같은 어학 시험과 GMAT 밖에 없었으니, 토플, IELTS, GMAT 에세이와는 비교가 안되는 2,000자, 4,000자 짜리 레포트에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케이스 로(Case Law)라는 게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었던 나로서는 도대체 "법이 뭐냐"를 가지고 한참을 고민했고, "성문법이 없다"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만 1년이 걸렸던 것 같다.

 

2학년 때는 이제 개념은 생겼는데, 임신을 한 덕분에 입덧이 심해서 3시간 수업을 듣기가 너무 고역이었다. 그래서 휴식 시간에 그냥 땡땡이 치고 집에 가는 게 일수였다. 그래도 다른 과목들은 수업을 조금이라도 듣기는 들었는데, 형법(Criminal Law)는 태교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아예 출석 체크만 하고 바로 땡땡이쳤다.

 

임신 8개월에 접어들면서 굳이 각각 3시간동안 앉아서 4과목이나 되는 시험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1년 미루었고, 그래서 이번에 revision class를 다시 듣게 된 것이다.

 

문득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나는 달뜨면 집에 왔는데, 서른 여덟이 되어도 아직 이러고 사는구나..

하지만 나는 아마 이 과정이 끝나면 또 새로운 과정을 찾아 남는 시간을 소비하겠지.

 

어쩌면 우리네는 이런 빡빡한 삶이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가장 널널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널널했던 대학생 시절에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맨날 우울해 했었으니까. 동물원의 사자같은, 의욕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시기가... 내게도 한 5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빡센 삼성이었다.

새벽별 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오는 삶.

 

우리는 사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벌어서 먹고 사는 이런 빡센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덧. 해외의 은행으로 옮겨서 덜 빡세졌다고 학위과정까지 찾아서 하는 것 보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1. 대학교 때 국제경영 한 과목, 썸머 세션 때 UC Berkeley에서 두 과목을 영어로 수강하기는 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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