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곰 2015. 10. 15. 14:26

10월 10일이 임산부의 날이라고 언론에서 임산부 자리 양보에 대한 기사가 나왔고 엄청난 댓글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에 좀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바로 '산후조리'에 대한 관점이다. 



어쩌면 내게 상처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재작년에 내가 알던 어떤 사람은 틈만 나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 여자들 참 유별나. 임신하면 완전 유세가 장난이 아니야. 산후조리? 그거 우리나라에만 있는 거 알아? 예전에 어떤 다큐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남미 여자들에게 산후조리 얘기하니까 그런게 있냐면서 웃더라." 


영국의 캐서린 왕세손비가 둘째를 낳고 8시간만에 대중 앞에 섰을 때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산후조리와 비교하는 언급을 많이 했었다. 


그 때 반박으로 많이 나왔던 말이 아래 두가지이다.

1. 서양여자들은 골반이 큰 데 반해 우리나라 여자들은 골반이 작다.

2. 서양아기들은 머리가 작은데 반해 우리나라 아기들은 머리가 크다. 


이와 관련해서 나의 경험담을 얘기하자면, 


2번은 확실히 근거가 있는 말 같다. 


내가 아기를 낳았을 때 2.82kg이었고, 정상 사이즈에 속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기가 너무 작다고 했다. 

한국 표준 신생아 체중은 3.4kg 였다. 


한 선배도 역시 여기서 매번 검진 때마다 20-30만원씩 지불하면서 검사했을 때 아기가 정상이라고 해서 마음놓고 있다가 한국 가서 아기를 낳기 전에 검진을 해보니 하위 10% 의 체중이었다고 걱정하면서 여기 의사 돌팔이라고 화냈었다. 


영국의 신생아 사이즈를 기준치로 따르는 홍콩과 한국의 아기 사이즈 기준치 자체가 다른 걸로 보인다.


1번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나는 키 168cm에 건장한 체구를 지녔고, 서양 여자들에 비해서 딱히 작은 체형이 아니었다. 아기를 낳을 때도 골반 관련해서는 크게 불편하게 느낀 건 없었다. 진통할 때 골반이 빠질 것 같이 아팠던 것을 제외하고는.


다만... 출산할 때 회음부 절개를 했고, 절개하고 꿰맨 부분이 너무 아파서 열흘 정도는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고생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산후조리 산후조리 하는가보다 생각했었다. 



* 산후조리는 한국에만 있다?


답은 노. 산후조리는 한국과 비슷한 풍토를 지닌 중국, 대만, 홍콩 등에도 있다. 


* 산후조리원은 한국에만 있다?


(교민들이 있는 곳을 제외한다면) 답은 예스인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 여자들이 유별나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한국 남자들이 유별나서가 아닐까 한다.


이 생각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한국에서 주문해온 산후조리 책자에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었다.


- 인용 시작: 


남편이 무관심해요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이 아기 울음소리에 밤잠을 못자서 피곤할까봐 부부가 각각 다른 방에서 잠을 자는 집이 많습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남편은 아내가 얼마만큼 피곤할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하루종일 집에서 동동거리며 아기를 돌보는 일은 어디에도 표가 나지 않습니다. 아기 젖먹이고, 재우고, 안아주고, 기저귀 갈고, 아기 때문에 청소나 빨래는 생각도 못하고, 아침과 점심 설거지도 하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세수도 못하는 날이 많습니다. 그렇게 지쳐 있다가 남편이 오게 되면 어질러진 집안에 쌓인 설거지가 창피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 던지는 한 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집구석이 이게 뭐야?" "하루 종일 뭐했어?"

일찍 귀가해서 집안일이며 아기 돌보는 일을 도와주길 바라지만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는 남편을 보면서, 산모는 자신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결혼했나?'

'애까지 낳고 이혼하게 되면 어쩌지?'

'저 남자 바람났나?'

'왜 나만 이러고 살지?' 등 집에만 있는 자신이 무능력하게 느껴지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간다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 인용 마침 - 


P. 38-39, 이순선 원장의 산후조리에서 신생아 돌보기까지 (이순선 지음, 효성출판사, 2014년 11쇄)


서양여자, 영국 왕세손비 비교하기 전에 서양남자, 영국 왕세손비가 처한 상황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중국, 홍콩, 대만에도 산후조리원이 없는데 우리나라만 있다고 하기 전에 중국, 홍콩 대만의 산후조리가 어떤지 상황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일단, 홍콩에서는 산후조리사를 1달 정도 고용한다. 동시에 입주 가정부인 헬퍼를 고용한다. 집안일은 헬퍼가 하고, 산후조리사는 산모의 산후조리와 신생아 돌보기를 담당한다. 산모는 집에서 쉬면서 자기 몸 추스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면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친정어머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시거나, 산후 도우미를 따로 집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그럴 형편이 안되는 경우는 산후조리원에서 나옴과 동시에 정글이다. 


여기도 일요일이면 산후도우미도 헬퍼도 쉬는 날이기 때문에 독박 육아가 되지만, 대신 신랑이 집안일과 아기 돌보기의 많은 부분을 담당한다. 

"집구석이 이게 뭐야?"라는 말을 하기 전에 남편이 그 '집구석'을 청소해야 하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서양 남자들은 육아를 공동 책임으로 생각한다. 즉, 여자의 일방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처럼 육아를 '돕는' 게 아니라 '같이' 일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왕세손비는 대중앞에 몇 십분 정도 서 있기만 하면, 집에 가서는 온전히 쉬기만 해도 될 것이다. 가정부에 보모에 요리사까지 있을 텐데 우리나라 여자들의 살림 환경과 비교할 게 아닐 듯 하다. 그리고, 나도 아기 낳고 8-10시간 정도에는 걷는 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 아마 마취가 덜 풀려서 그랬던 것 같다. 저녁에 아기 낳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양치하러도 갔었으니까. 문제는 그 날 오후부터 거의 앉지도 서지도 못했다는 거......



그러니 무턱대고 우리나라 여자들만 유별나다고 하지 말자. 다들 각자 처한 환경이 있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