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수적인 사람인지라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와는 달리, 혼전 임신이 꼭 나쁘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내가 혼전 순결을 지키는 것은 나의 가치관이고, 다른 사람은 그러든 말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이 내 배우자가 될 것이 아닌 이상. 그리고 요즘 불임이니 난임이니 문제들이 많으니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양가 부모님 허락을 받았으면 결혼 전에 임신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것은 결혼하기 전까지의 생각이다.
나는 초스피드로 수월하게 결혼했다. 고백을 받은 날부터 결혼할 날자를 생각했었고, 사귀기로 한 지 3개월 이내에 결혼 확정, 그로부터 3개월 후에 결혼을 했다. 즉, 사귀고 결혼까지 6개월 걸렸다. 양가 부모님 모두 OK 하셨고, 식장도 바로 잡혔고, 아무 문제 없이 잘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연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이어졌고,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속상하거나 속끓이는 일 없이 잘 지내왔다. 아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임신이 되었다. 나는 임신이 되면 바로 알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나는 생리주기도 정확한 편이고 항상 주기를 관리해오고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바로 기록하고 병원에 가거나 했으니까. 그래서 왜 임신한 줄 모를까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나도 역시 몰랐다. ㅡ.ㅡ; 생리 예정일이 1주일이나 지나고도 그냥 늦어진다고만 생각을 했다. 이유는... 그 전에는 몰랐는데, 임신 아주 초기에 아기집이라는 게 만들어지는데 그때 느껴지는 통증이 생리전 통증과 아주 유사했기 때문이다... 아무 증상이 없이 생리가 늦어진다면 바로 알아봤겠지만, 생리통이 느껴지면서 생리가 없으니 생리가 늦어진다고만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생리 예정일보다 1주일 지나서야 임신 테스트를 할 생각을 했고 그때는 이미 굳이 아침 첫소변으로 하지 않아도 찐하게 두 줄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그 다음날 바로 병원으로 가서 임신 확인을 했다. 나이 때문에 원래 결혼 후 3개월 내로 임신을 할 계획이었던 나는 상상대로라면 계획대로 되어서 마냥 좋았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임신 테스트기를 보았을 때 '뭥미' 했다. ㅡ.ㅡ; 임신 확인 후 남편에게 보낸 나의 첫 메시지는 '집안일은 이제 니가 다해' 였었다.
그리고..그때부터... 나의 입덧은 시작되었다. 입덧은 복불복이라고 누구는 8주까지 아무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지만 4주부터 죽어나는 사람도 있었으니... 나는 그 중간쯤 되었다.
4주 - 속이 메스껍고 하루에 한 번 정도 올라옴.
5주 - 속이 메스껍고 하루에 두 번 정도 올라옴.
6주 - 속이 메스꺼운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시도때도 없이 올라옴.
7주 - 먹고 나면 어김없이 올라옴.
8주 - 먹든 말든 올라옴.
9주 - 올라오면 완전히 비울때까지 토함.
10주 - 토하다가 울음. 토할때와 토하고 나면 위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느껴짐.
(감기가 추가되어 정말 살기 싫어짐.)
11주 - 토하다가 울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함.
12주 - 7주 수준의 올라옴으로 내려감.
13주 - 하루에 한 번 정도 토함. 좀 나아지나 했는데 그저께는 소파에 앉아있다가 울렁거리기 시작, 화장실로 가는 그 몇 걸음 사이 거실 난장판 만들고 화장실 초토화...
토하고 나면 나는 뻗기 때문에 뒷수습은 언제나 신랑이... 그런데 그저께 처음으로 거실을 난장판 만들자 어제는 침대 옆에 세숫대야를 갖다놓음. 혹시 자다가 급하면 거기다..ㅡ.ㅡ;
그 와중에 드는 생각이 '와- 나는 지금 결혼해서 신랑이 수발 다 해주는데도 죽을 거 같은데 만약 혼전 임신이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주변 사람들 조언도 많이 듣고 남들 하는 거 관찰도 많이 하다보니, 결혼 준비 과정이라는 게 장난이 아니다. 나는 주로 떼를 썼던 게 드레스 입기 싫다 화장하기 싫다 웨딩사진 찍는 거 귀찮다 뭐 이런 종류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집 문제, 혼수 문제, 예단 문제, 상견례 등.....
상견례 하기 전에 깨졌다는 커플, 상견례 하다가 깨졌다는 커플, 혼수 예단 등으로 싸우다가 깨졌다는 커플 등.
혼전 임신을 하게 되면 여자의 협상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럴 것 같다. 임신했으니까. ㅠㅠ
정신 제대로 박힌 남자라면 당연히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하면 결혼을 결심하겠지만,
시댁 어른들 눈치도 보이고 상견례나 혼수 예단 등에서 협상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친정 부모님은 딸이 임신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하자는 대로 해야하고.... 그래서 많이 속상했다는 여자들을 보면서 '아 혼전 임신 안 좋구나' 생각을 했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이런 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모든 게 다 수월하다고 쳐서, 아는 선배 오빠 케이스처럼 남자도 아기가 생겨서 완전 기뻐했고, 예비시댁/처가도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것도 반가운데 아기까지 있다고 하니 부모님들이 너무너무 좋아하셨다고 해도...
여자는 너무 힘들다. 몸이.
임신 확인되는 경우가 보통 5주차. 좀 늦으면 8주차.
아무리 빨리 결혼식을 진행한다 해도 보통 1-2개월은 걸리는데...
그럼 12주차에서 16주차 사이에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인데,
보통 이 때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한다. 입덧의 초절정 클라이막스.
결혼식이라는 건 몸 건강할 때도 결혼식 사흘전에 전에 없던 입병이 다 생기고 배탈이 나고 긴장 레벨이 장난이 아닌데, 그리고 아침부터 메이크업 + 헤어 + 드레스 하고 결혼식 하고 폐백에 피로연에...
몸이 정말 너무너무 힘들다는 거.
아, 보통 결혼은 5개월 정도에 하는 것 같았다. 보통 10주 정도에 알아서 2-3개월 준비하고 그러면 5개월이라는 것 같았다. 그때쯤 되면 입덧도 없어지고 몸도 한결 편해지는 임신의 '허니문' 시기라고 하니 결혼식 자체는 괜찮겠다. 준비하는 시기가 힘들지...
아무튼, 나는 혼전 임심을 하고 결혼식을 치룬 분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결혼한 지 5-6개월만에 아이를 낳은 분들께 메세지를 보낸다.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난 죽을 거 같은데.'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갈 시기인 그분들이 내게 보내는 메세지.
'12주만 지나면 괜찮아져. 늦어도 14주.'
넵. 이제 1주일 남았네요! 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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