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 오답 노트

결혼정보회사

2012년 6월, 하나의 만남을 끝내고 우울해하던[각주:1] 찰나에 결혼정보회사의 권유를 받고 모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 가뜩이나 시기적으로 결혼 가능 여부에 대해서 우울했던 시기.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잘만 결혼하는 것 같은데, 나만 뒤쳐진 것 같고.. 그때 걸려온 결혼정보회사 아주머니의 연락. 지금은 괜찮지만 나이가 들어 50먹고 60먹었을 때 혼자이면 얼마나 쓸쓸한 지 아냐며. 그러기에 사람은 짝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그때 나는, 아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너무 잘나서 남자들이 부담스럽다고 떠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 결혼정보회사 아주머니와 상담을 할 때도, 나는 나와 비슷한 스펙의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지금껏 너무 눈을 낮춰서 스펙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그런 것 같다며.

 

그래서 나와 스펙이 비슷한 사람들을 소개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막말로 너무 재수가 없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결혼정보회사는 절대적으로 여자가 불리한 집단이다. 결혼에 목매달은 여자들과 결혼해볼까 생각하는 남자들의 조합. 당연히 이 조합에서 여자들은 조급하고, 남자들은 느긋하다. 그리고, 결정권은 남자에게 있다...

 

차라리 다른 데서 만났더라면 남자들이 이렇게까지 무례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직장 동료라든가, 거래선 사람, 혹은 그들이 소개시켜준 사람 등. 그런 자리였다면 이렇게까지 대놓고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과, 왠만한 남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결혼하는데 여기까지 나온 거 보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서른 다섯 전에 결혼을 하려고 조급함을 느꼈던 나는 상대적인 약자가 되었고, 처음에 보았던 눈높이에서 점점 눈높이를 낮춰 가게 되었다.[각주:2]

 

더 웃긴 건, 눈높이를 낮춰봐야 돌아오는 건 뭉개진 자존심 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 스펙이면 날 좋아하겠지 싶은 사람마저도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후에 결혼정보회사 매니저 아주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나보다 스펙은 많이 부족하지만,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귀여운 외모를 가진 아가씨를 선택했다고 한다.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외모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럼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귀여운 외모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게 반 년 정도 시간과 돈을 소비한 끝에 나는 무척 피곤한 상태가 되어 있었는데, 마침 나에게 저돌적으로 고백해 오는 남자가 있어서 만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남자와도 잘 안되었었는데, 지금 와서 냉정히 말하자면, 내가 그 반년동안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마음 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남자였다. 당시에는 거의 좌절수준이어서, 누구라도 나 좋다는 사람 있으면 그냥 결혼해야겠다 는 마인드까지 내려갔었다.

 

"어렸을 때는 예뻤겠네요."

이따위 말이나 하는 남자와 선을 보았으니, 내가 연예인 급으로 예쁘다는 남자에게 안 넘어갔겠는가. (물론, 그것은 초반, 꼬실 때 이야기였다.)

 

 

결혼하기로 한 이후, 제일 먼저 한 행동 중 하나는 바로 이 결혼정보회사를 탈퇴하는 일이었다. 탈퇴하려고 연락하자 또 이런 저런 남자 얘기를 하면서 만나보라고 하기에, 결혼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축하한다며 청첩장과 같이 탈회서류를 보내라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탈회를 했다.

 

 

결혼정보회사의 그 반년 경험을 통해 작년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와의 악몽같은 시간을 지나 지금의 약혼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게 뭐 일련의 프로세스였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누가 나에게 결혼정보회사가 어떤지 묻는다면, 나는 왠만하면 주변에서 찾으라고 하고 싶다. 마음에 아주 굳은 심지가 있어서 번번히 거절당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지 않는 한.

 

 

 

  1. 그 만남이 너무 아쉬워서도, 헤어짐이 너무 슬퍼서도 아니었다. 당시 나이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넷, 나이는 먹어가는데 결혼할 남자는 없고.. 하는 막막함이 그 우울함의 이유였다. 과연 나는 결혼은 할 수 있을까 하는. [본문으로]
  2. 여기서 눈높이는 스펙을 말함. (학력, 집안 등.) [본문으로]

'연애 오답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파하지 말아요.  (0) 2016.01.29
연애 오답 노트를 적자.  (0) 2014.12.15
억지.  (0) 201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