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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관한 고찰

결혼할 남자, 아닌 남자.

여자라면 대부분 연애를 시작할 때 남자와 결혼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고 한다. 반면, 보통 남자들은 처음부터 결혼을 생각하고 시작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만, 초반에 결혼할 여자와 연애만 할 여자의 세팅이 되는 경우가 많고, 이게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물론, 결혼할 여자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여러 부분 부딪히면서 안좋게 끝나는 경우도 있고, 연애만 할 여자라고 생각을 하고 시작하였는데 어느 순간 너무 잘맞고 훌륭한 여자라고 생각이 되어서 결혼할 여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것은 케바케(case by case)라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2012년이었던가. 2014년에 결혼할 거라고 세팅을 했다. 서른을 넘자 주위에서 언제 결혼하냐, 얼른 결혼하라고들 성화였다. 그때 세팅한 게 2014년이었고, 2014년 2월 14일이 2014-214 이니 그때 결혼을 하겠다 라고 얘기를 해왔었다.

 

2011년 말, 지내던 동생과 크리스마스 때 하루만 연인 코스프레 하자고 하다가 어찌어찌하다 잠깐 사귀게 되었다. 10살 연하였고 당시 군복무중이었으며 전역해도 학생이었지만, 내가 먹여살릴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 얼마 못가 헤어졌고 깊은 관계도 아니어찌만, 아무튼 그래도 결혼 이야기를 했었다.

 

2012년 중순, 나는 그 10살 연하 아이와 헤어지면서 힘들어 했었다. 그 아이가 너무 좋아서라기 보다는 왜 내 연애는 번번히 실패를 할까, 이게 내 문제인가 하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때 나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모 팀장의 연락을 받았고, 그녀는 내게 나이 들어 혼자 사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가뜩이나 괴로운데 그 말에 나는 혹했고, 듀오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그쪽에서 건내주는 남자의 스펙들이 마음에 안들어 퇴짜를 놓았었다. 그 다음 깨달은 것은, 내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나와의 미팅을 거절했으며, 일부 나온 남자들도 그다지 열정적으로 짝을 찾는 것 같지 않았다. 일부 열정적으로 짝을 찾는 듯한 남자들은 굉장히 재수없었으며 당시 내 느낌은 정말 내가 눈 낮춰서 만났는데 잘나지도 못한 것들이 오히려 나를 그렇게 보고 있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꿀리는 스펙은 단 하나, 나이였다.

 

그렇게 여러 번 좌절을 경험한 나는 이제 왠만하면 그냥 만나겠다 라는 마인드로 세팅이 되었고, 2012년 연말, 우리 나이로 서른 넷의 마지막 달이 되자 불안함이 극에 달했다. 왜, 서른 다섯이 초혼의 마지노선이라 하지 않는가. 왠만하면 그냥 만나겠다는 마인드로 미팅을 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괜찮은 분위기였음에도 애프터 신청은 없었고,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더 초조해갔다. 그 중 애프터라고하기까지는 좀 그래도 계속 연락이 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내 외모가 장군감이라느니 살을 빼면 예쁠 거라느니 이런 말을 하기에 정말 내가 이런 사람이라도 만나야 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던 2012년 말, 계속되는 미팅 실패로 지친 내게, 성탄 미사 때 나를 보고 반해서 자기 이상형이라고 쫓아온 남자가 있었다. '아직 난 죽지 않았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까지 연락이 되던 사람과 그 남자를 비교하게 되었다. 스펙은 그 남자가 월등히 처지지만, 20대 때나 느껴보았을 그 열정, 그 적극적임에 나는 그와 사귀게 되었다. 내 외모가 장군감이라느니 살을 빼면 예쁠 거라느니 이런 말을 하는 남자와 자기 이상형이라며 내가 너무 예쁘다고 연예인급이라고 하는 남자 중, 후자에 혹하지 않을 여자가 얼마나 될까.

 

그때 나는 그랬다. 사귀면 3개월 안에 결혼할 거라고.

 

그는 처음에는 아무말을 하지 않더니, 사귀기로 한 이후에는 그 말을 비웃었다. 적어도 1-2년은 보고 결혼해야 하는 거라고. 그랬다. 그는 오랫동안 사귀다 결혼을 앞두고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여자가 있었다. 그는 많은 연애 경험은 없었지만 한 사람과 오래 사귄 경험이 있엇다. 여기까지만 보면 크게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그는 정말 성격이 이상했고, '나쁜 남자'가 아닌 '못된 남자'였다. 그 사람 자체가 못된 사람인지, 아니면 나와의 조합이 안맞아서 못된 남자가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결론은 나는 그로 인해 너무 힘들었고, 매일매일 마음에 멍이들어갔다. 나중에는 뱃살을 빼라는 둥, 아빠 신발 신고 나왔냐는 둥 험한 말을 서슴치 않고 했었다. 그래도 당시에 나는 서른 다섯이었고, 결혼을 하고 싶었다. 결혼 얘기를 하는 내게 그는 여자가 결혼 얘기를 하면 값 떨어진다고, 왠지 자기가 손해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까지 얘기를 했었다. 처음에 연애하면 3개월 내로 결혼한다 얘기하지 않았냐 했더니, 그말 듣고 가만 있었지만 속으로 웃겼다면서 그게 말이나 되냐고 뭐라고 했었다. 정말 웃긴 건, 1년 동안 여러 번 헤어지고 다시 만났는데, 그런 심한 말 험한 말을 듣고도 내가 잡았었다는 것이다. 나이의 덫에 걸린 여자의 비참함이랄까.

 

2013년 말. 나는 연말까지 그가 청혼하지 않으면 헤어지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물론, 생각만큼 그게 쉽지는 않았다. 주변에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지 않냐고도 했었다. 하지만 나를 정말 아끼는 이들은 혼자 살더라도 그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했다. '막말남'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14년 1월 1일. 약속 시간 5분 전 그에게 문자가 왔다. 낮잠자다 지금 일어났다는 것이다. 순간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내가 화가난 것 같으니 오늘은 보지 말고 다음에 보자는 것이다.

 

그때 나는 어쩌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게 되었을까 뼈저리게 후회했다.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에 스커트를 입고 집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길거리를 헤맸다. 정말 아니다, 정말 이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와 연락을 끊어나갔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자 그는 내게 헤어지는 거냐 물었다. 예전같으면 그가 헤어짐을 무기로 협박을 해올 때 나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그때는 알겠다 하고 응답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관계를 끝냈다. 이후로 몇 번 연락이 왔지만 나는 응답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헤어지고 나니 자신감이 붙더라. 그전까지는 나이 때문에 이제는 퇴물이라고 생각을 해왔었는데, 그 험한 꼴 다 당하고 나니 오히려 자신감이 붙는게 나는 원래 이렇게 예쁘고 당당한 사람이다, 싫음 관둬라, 너 없어도 나는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다 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너같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내 힘으로 끊어낼 수 있었다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랄까. 더이상 그런 고통속에 나를 놓아두지 않고 내 스스로는 내가 지킬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러고 나니 나에게 드디어 짝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똑같이 나는 연애하고 3개월 있다 결혼하겠다 했다. 그리고, 3개월 연애를 하고 정말 결혼 날짜를 잡았다. 말을 꺼낸 것도, 날을 정한 것도 나였지만, 나와 평생 함께하고 싶다고,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매달린 것은 그였다.

 

사실 작년 그 남자와 헤어진 이후로 나는 이제 이세상 어느 남자를 만나더라도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 그 어느 남자를 만나더라도 행복하게 지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거의 대학생 때의 친구처럼 정말 순수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맞춰주는 친구를 만난 것이다! 왜, 그렇지 않은가. 20대 때는 정말 여자애들이 남자애들 막대하고 남자애들은 순수해서 그거 다 맞춰주고 그런..  20대 때는 그런 '호구남'에 대해서 전혀 고마워하지 않지만, 20대 후반이 넘어가면서 점점 주변에 그런 '호구남'들이 멸종되어 가고 약삭빠른 남자들만 남아있게 되면서 어릴 때의 그 호구남들을 그리워하게 되고 만약 내가 다시 그런 호구남을 만나면 정말 잘해줄 텐데 라고 생각하게 되는.. 작년에도 그런 호구남인 줄 속아서 만났는데 알고 보니 늑대도 그런 사나운 늑대가 없었던 거고.. 

 

사실 작년에 너무 사나운 늑대를 만나서 나는 양처럼 순한 그 친구가 편하고 좋았다. 어떤 과정을 같이 하면서 우연히 만나서 같이 공부하게 된 친구인데, 처음에는 그의 외모를 보고 당연히 여자 친구가 있을 거라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같이 지내면 지낼 수록 여자친구 없는 게 너무도 이해가 가는 그런 친구였다. 그의 숫기없고 소극적인 모습은 그의 외모를 가려 점점 흥미없고 재미없는 호구남으로 만드는 것이다. 말 잘듣는 착한 친구. 어린 여자 친구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사나운 늑대에게 여기저기 물려 상처투성이었던 내게는 오히려 이런 소극적인 친구가 편하게 느껴졌고, 점점 나의 원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육식녀. 이게 내 모습인데, 작년에는 사나운 늑대를 만나 조금만 움직여도 물리니 옴짝달싹 못하는 불쌍한 고양이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점점 나는 활달한 육식녀로 다시 살아났고, 소극적인 친구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여자애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상처받았던 내 남자 친구.

결혼을 미끼로 사나운 승냥이에게 여기저기 물려서 상처받았던 나.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보듬어주기 시작했고 서로 격려해주기 시작했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잘 될 거라고 그렇게 서로 격려해가면서 우리는 점점 더 친해졌고, 어느 순간 나는 내 남자친구에게 외모와 상관없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여자가 되어 있었고, 만난 기간과 상관없이 이 사람이다 라는 확신을 주었고, 만약 이 여자가 없으면 난 정말 큰일날 거야 라는 생각을 남자친구에게 심어주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내 남자친구는 내가 결정한 대로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남자에게는 추격본능이 있다. 초식남이라고 해서 추격본능이 없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게 많이 약해져 있을 뿐.

육식녀라고 해서 남자에게 보호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걸 많이 억제하고 있을 뿐.

 

육식녀와 초식남은 그걸 맞춰주면 된다. 육식녀가 리드를 하되, 초식남에게 미끼를 던져주면 된다. 내가 사냥감이 되어 사냥꾼이 추격하게 할 수도 있지만, 내가 강아지에게 공을 던져주어 추격하게 해줘도 되는 것이다. 강아지들에게 공을 던져줘 보았는가? 그럼 강아지들은 신났다고 가서 그걸 물어가지고는 와서 다시 또 던져달라고 한다. (물론 우리집 강아지는.. "야, 니가 가서 주워와 ㅡㅡ+" 하지만... 걔는 본인이 강아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꼭 내가 사냥감이 될 필요는 없다. 내가 그걸 던져서 그가 그걸 즐기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그런 걸 잘 몰랐다. 그래서 초식남의 기를 팍 죽여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큰 방향만 제시한다. 언제쯤 결혼하겠다. 그 다음은 그의 몫이다.

 

PS - 그가 그의 몫을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칭찬은 돌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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