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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談

아버지에게서 신랑으로.

결혼식장에서 아버지는 신랑에게 나의 손을 건네주며 말한다.

"잘 부탁하네."

 

과거 사회에서는 그것이 재산(property)였던 딸(여자)을 다른 사람(=남자)에게 건네는 (conveyance) 과정이었다. 한동안은 그것이 아버지의 호적에서 남편의 호적으로 건너가는 상징적인 과정이기도 했고 말이다.

 

나의 고모는 결혼해서 처음 딸을 낳았다. 그리고 그 다음도 딸을 낳았다. 그 동안 고모부는 그토록 고모를 구박했다고 한다. 아들을 못 낳는다고. 그리고 다행히(?) 그 다음에는 아들을 낳았다.

 

어머니는 본인이 경상도 분이셨지만, 경상도 남자는 사윗감으로 되도록 피하고 싶어하셨다. 경상도 남자들이 보수적이라는 게 이유였다. 고모의 경우를 보았던 나는 거기에 크게 토를 달지 않았다.

 

나는 어린시절 가부장적인 사회를 보고 자랐다. 영화의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들의 여자친구를 그토록 반대해서 헤어지게 해 놓고 그 여자가 아들을 낳자 강제로 아들을 빼앗아 온 이야기. 여자는 순결을 잃으면 시집을 못간다고 생각하던 시대. 여자가 강간을 당하면 그것은 여자가 몸단속을 못해서 그렇다라고 생각하던 시대.

 

나름 알파걸이었던 나는,

그것을 불의(不義)한 사회라고 정의했고, 나는 그렇게 남자에 종속된 삶을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며 자라왔다. 그런 드센 나를 받아줄 남자는 많지는 않았지만, 나름 매력적인 외모에 남자가 끊이지는 않아서 나름 힘든 싱글 생활을 보내왔었다.

 

각설하고...

 

아버지가 신랑에게 나를 넘기면서 나의 주인이 (일본에서는 아직도 남편을 고슈징, 즉 주인이라고 부른다. 물론 대개 종속적인 의미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통 '집주인'이란 의미로 이해된다. '안사람'과 대조되는 의미랄까.) 신랑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나름 알파걸답게(?) 집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리더가 되었다.

 

그런데, 문득 오늘 아침 생각해보니, 아버지에게서 신랑으로 전수된 게 있다.

바로 머리 말려주는 거다.

 

어릴 때 아버지가 내가 머리 말리는 걸 보시고는 항상

"야 일루 와봐"

그러고는 머리를 말려주셨다.

 

이제는 신랑이 내 머리를 말려준다.

 

문득,

어린 시절 내 머리를 말려주시던 아버지의 손길이 그리워진다.

이번에 만나면 머리말려달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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